“150억원 뇌물수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임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박지원 피고인)

“오랜 기간 국민의 관심을 끌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사건입니다.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남기춘 검사)

2006년 4월4일 오후 3시.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302호 법정에서 남기춘(南基春) 청주지검 차장검사와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각자의 인생을 건 ‘마지막 승부’에 나섰습니다. 150억원의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장관의 결심 공판에서 남 검사가 징역 20년을 구형하는 논고(論告)를, 박 전 장관이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는 최후진술을 각각 읽은 것이죠. 올해 46세인 남 검사는 64세인 박 전 장관보다 꼭 18살 어립니다. 두 사람의 나이는 ‘4’와 ‘6’의 순서만 바꾼 숫자인 점이 묘한 인연처럼 느껴집니다. 참여정부 출범 첫 해인 2003년 시작된 두 사람의 ‘악연’은 차기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2006년까지 벌써 4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지원 전 장관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이사회 회장으로부터 150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단서가 처음 포착된 것은 2003년 6월 당시 대북송금 사건을 수사하던 송두환 특별검사팀에 의해서였습니다. 특검팀은 정상회담과 관련, 우리 정부가 북한에 5억달러(약 5000억원)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현대그룹·산업은행 등을 무리하게 동원한 혐의(직권남용)로 박 전 장관을 일단 구속한 뒤 150억원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죠. 하지만 박 전 장관은 철저한 부인으로 일관했고, 특검팀 활동 시한 만료와 동시에 이 사건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로 넘어갔습니다. 훗날 ‘국민검사’로 추앙받게 되는 안대희 검사(현 서울고검장)가 당시 중수부장으로 재직 중이었고, 그 밑의 중수1과장이 바로 남기춘 검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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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을 받을 당시의 박지원씨. 일찍이 한쪽 눈을 실명한 그는 구치소에 있는 동안 녹내장이 악화돼 나머지 한쪽 눈마저 잃을 뻔한 위기를 겪었다.


검찰 입장에서 박지원 전 장관의 혐의를 밝혀줄 참고인은 딱 3명이었습니다. 돈을 마련한 정몽헌 회장, 마련된 돈을 박 전 장관에게 전달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그리고 그 돈을 넘겨받아 박 전 장관 대신 관리해줬다는 김영완씨가 바로 그들이죠. 남기춘 검사는 해외로 빠져나가고 없는 김씨를 제외한 나머지 2명 - 정 회장, 이 전 회장 - 을 번갈아 불러 조사한 뒤 박 전 장관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했습니다. 남 검사를 도와 공소장을 작성한 이병석 검사(현 변호사)는 2003년 9월 열린 첫 공판에서 이 사건을 대뜸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뇌물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현대에서 받은 150억원은 훗날 전남·광주 지역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할 생각으로 모은 정치자금이 아니었느냐”며 매섭게 추궁했죠. 박 전 장관은 “국민의 정부가 끝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시고 해외에 나가 조용히 살 생각이었지 선거 준비를 한 적은 없다”면서 “나를 아내와 딸 곁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처음엔 검찰이 우세한 듯 했습니다. 비록 김영완씨는 국내에 없었고 정몽헌 회장은 자살했지만, 이익치 전 회장의 결정적 진술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더욱이 정 회장은 세상을 뜨기 전 검찰에서 “박지원 전 장관에게 돈을 줬다”고 실토했고, 해외에 체류 중인 김씨도 검찰에 보낸 자술서에서 이를 시인했으니 검찰의 승산은 충분했습니다. 실제로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김상균 부장판사)도,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이주흥 부장판사)도 이를 근거로 박 전 장관에게 징역 12년이란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남기춘 검사의 ‘완승’으로 굳어질 뻔한 이 사건은 2004년 11월 대법원에서 참으로 극적인 ‘반전’을 겪습니다 .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2부(주심 유지담 대법관)가 “오락가락하는 이 전 회장의 진술을 믿기 어렵고, 도피 중인 김씨의 자술서 또한 믿을 게 못 된다”며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것이죠. 박 전 장관과 그 지지자들 입장에선 ‘기적’이었겠지만, 남 검사나 이병석 검사에겐 참으로 ‘악몽’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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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국제검사협회(IPA) 서울 총회에서 만난 옛 대검 중수부 수사팀. 2003년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의 주역들이 다 모여 있다. 앞줄 왼쪽부터 안대희 중수부장(현 서울고검장), 문효남 수사기획관(현 의정부지검장), 뒷줄 왼쪽부터 김수남 중수3과장(현 법무부 홍보관리관), 이인규 원주지청장(현 서울중앙지검 3차장), 남기춘 중수1과장(현 청주지검 차장), 유재만 중수2과장(현 변호사) [사진 = 오마이뉴스]


“책임을 지라면 지겠지만 전 아직도 박지원 전 장관이 150억원을 받은 사실을 확신합니다.”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난 굳은 표정의 남기춘 검사가 불쑥 던진 말입니다. 당시 그는 대검 중수1과장을 마치고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재직 중이었죠.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이 1년 넘게 진행되는 동안 그의 보직은 서산지청장, 그리고 다시 청주지검 차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사이 유일한 ‘동지’였던 이병석 검사도 검찰을 떠나 이제 그 홀로 외로이 남게 됐죠. 반면 “꽃이 져도 바람을 탓하지 않겠다”던 박 전 장관은 법원 판결에 의한 ‘명예회복’의 순간만을 초조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담당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2부(이재환 부장판사)는 오는 5월4일 선고를 내릴 예정이죠. 하급심 판사가 대법관의 판단을 뒤엎긴 어려운 만큼 150억원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질 공산이 커 보입니다. 남 검사와 박 전 장관의 4년에 걸친 대결에서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요? 재판부의 최종 결론에 관심이 모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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