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3羅唐-百倭의 백강(白江)전투

금강은 말없이… 탁 트인 금강(백강) 하구의 모습. 1300여 년 전 이곳에서는 신라-당 연합군과 백제-왜 연합군 총 22만여 명이 맞붙은 대전인 ‘백강 전투’가 벌어졌다. 동아시아 최대 해전으로 기록된 이 전투에서 숨진 병사들이 흘린 피로 바다가 핏빛으로 물들었을 정도였다고 문헌들은 기록하고 있다. 지원군으로 파병된 왜군 4만여 명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이후 정권의 존립 기반까지 흔들리게 된다. 동아일보DB

수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김용운 전 한양대 교수는 최근 펴낸 ‘풍수화(風水火)-원형사관(原型史觀)으로 본 한중일 갈등의 돌파구’라는 책에서 663년 백강(白江·지금의 금강 하구)에서 신라-() 연합군과 백제-() 연합군이 맞붙은 ‘백강 전투’가 오늘날 한중일 관계의 틀을 만든 핵심적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데다 우리 역사교과서에서조차 거의 언급되지 않는 전투를 그는 왜 이렇게까지 주목한 것일까. 여기에는 그럴 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

우선 전투에 참여한 백제군(5000) 왜군(42000) 신라군(5만 명) 당군(13만 명)의 수만 해도 총 227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였다. 김현구 선생은 ‘백강 전투는 당시 가장 많은 국가와 군사가 참전해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동북아 최초의 대전이었다’고 평한다.

 

백제는 이 전투를 계기로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신라는 당과 더욱 가까워지고 왜와는 멀어진다. 한반도와 왜는 각자 통일국가를 형성하면서 독자적인 정치체제와 문화를 갖게 된다. 중국은 백강구(白江口), 일본은 백촌강(白村江) 전투로 기록하고 있는 백강 전투가 일어났던 1300여 년 전 한반도로 가 보자.

○ 백제의 항전(
抗戰)

우리는 흔히 의자왕 하면 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삼천궁녀에 둘러싸여 나라를 망친 망국의 대표 인물로 생각한다. 하지만 백제는 멸망 직전까지 융성했고 막강한 국력도 갖췄었다. 의자왕은 즉위 이듬해인 642년부터 659년까지 총 8차례 신라를 공격했고 대부분 승리했다. 삼국사기 김유신전에는 “백제를 치자”고 건의하는 김유신에게 진덕여왕이 “큰 나라를 침범했다가 위험하게 되면 어찌 하려는가”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만 해도 백제가 큰 나라, 신라는 작은 나라였던 것이다.

655
년 김춘추가 무열왕으로 즉위하자 백제는 고구려와 함께 신라 북부를 침공해 30여 개 성(
)을 무너뜨린다. 659 4월 백제가 다시 신라를 침입해 2개 성을 함락하자 신라는 당에 구원을 요청한다. 당 소정방은 이듬해인 660 6 13만 대군을 이끌고 내려온다. 당군(唐軍)은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 병사 5만 명과 함께 백제 도성인 사비성을 공격한다. 계백 장군이 5000여 병사와 황산벌에서 결사항전했지만 결국 사비성은 함락된다. 의자왕은 왕자와 장군 88, 백성 12807명과 함께 당의 수도 장안으로 끌려간다.

이 사비성의 함락 시점을 백제의 멸망 연도로 보지만 사실 백제의 저항은 이후 3년이나 이어질 정도로 끈질겼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백제부흥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

백제 유민들은 사비성 함락 4개월 만인 660 10월 주류성(
周留城·용어 설명)을 임시 왕성으로 삼는 한편 왜에 긴급지원군을 요청한다. 20년 넘게 왜에 머물고 있던 의자왕의 아들 왕자 풍()을 급거 귀국시켜 달라는 청도 함께였다.

이후 왜가 보여준 대응은 마치 혈육을 대하는 듯 헌신적인 것이었다. 당시 왜왕은 사이메이 여왕(
齊明天皇·재위 655661)이었는데 여왕은 백제와 가까운 후쿠오카로 직접 가서 구원군을 준비시키고 오사카로 가서는 무기를 준비시킨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동분서주하니 몸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었다. 여왕은 661 1 6일 오사카 항을 출발해 여러 곳을 돌며 군사를 모으다 7 24일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 혈맹이었던 백제와 왜


출병은 아들 덴지 왕 대(
)에서 이뤄진다. 덴지(天智) 왕은 어머니의 시신을 당시의 수도였던 아스카로 옮긴 다음 11월에 상을 치르자마자 출병 준비를 한다. 그리고 2년 뒤인 663년 총 42000명이나 되는 왜군을 주류성으로 파견한다.

육로는 신라군이 지키고 있어 부득이 바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신라의 요청을 받은 당나라 수군은 663 8 27일 주류성과 가까운 금강 하구(백강)에서 백제와 왜군 연합군을 맞닥뜨린다. 일본서기는 당시 왜군의 전투 과정을 이렇게 전한다
.

“당나라 장군이 전선 170척을 이끌고 백촌강(백강)에 진을 쳤다. 일본의 수군 중 먼저 온 군사들과 당 수군이 대전했다. 일본이 패해 물러났다. 당은 진을 굳게 해 지켰다.…다시 일본이 대오가 난잡한 병졸을 이끌고 진을 굳건히 한 당의 군사를 나아가 쳤다. 당은 좌우에서 군사를 내어 협격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관군(왜군)이 적에게 패했다. 물에 떨어져 익사한 자가 많았다. 뱃머리와 고물을 돌릴 수 없었다.(김용운 책에서 재인용
)

당시 동원된 왜 수군의 배는 무려 1000여 척에 이르렀다고 한다. 중국의 ‘구당서(
舊唐書·당나라 왕조의 정사를 기록한 책)’는 ‘왜국 수군의 배 400척을 불태웠는데 그 연기가 하늘을 덮었고 바닷물이 왜군의 시체들로 핏빛이었다’고 적고 있다.

막대한 희생을 치른 덴지 왕은 정권 자체가 흔들린다. 그가 죽자 아들 고분(
弘文) 왕이 이어받지만 곧 작은아버지 덴무(天武)에게 살해당한다. 덴무는 백강 전투를 치른 지 9년 만인 672년 왕위에 올랐다.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한국판 세조가 된 것이다. 일본 역사학계는 이를 ‘진신(壬申)의 난’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백제인들의 집단 이주


나라를 잃은 백제인들은 너도 나도 배를 타고 일본 열도로 건너간다. 3년 전 사비성이 함락되었을 때에도 왜로 건너간 백제인이 많았지만 대거 집단 이주가 시작된 것은 백강 전투가 결정적 계기였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다.

일본 고고학회 회장을 지낸 니시타니 다다시(
西谷正) 규슈대 명예교수는 “백제 멸망과 유민의 대규모 이주는 일본 역사를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됐다”며 “백강 전투를 치른 7년 뒤인 670년에 왜는 국호를 일본(日本)으로 바꾸고 새롭게 태어난다”고 전했다.

김용운 선생도 왜로 망명한 백제인 중에는 왕족은 물론이고 귀족들과 지식인이 많았는데 이들의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왜가 통일국가 수립에 박차를 가한다고 전한다. 그는 앞서 언급한 책에서 “전투 이후 한반도(통일신라)와 일본 열도가 각각 통일정권을 이룬 것까지는 공통적이었지만 신라는 당 눈치를 살피느라 군사력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고 일본은 개척과 확대의 노선을 택하게 돼 한일 민족 간의 원형은 크게 갈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

반도와 열도라는 지형적 차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국과 일본은 백강 전투 후 각각 율령제와 봉건제, (
)과 무(), 중국으로의 질서 편입과 이탈이라는 정반대의 국가 체제로 갈라진다는 것이다.

다시 그의 말이다
.

“백강 전투 후 한국인들은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들을 거의 잊었으나 일본인들의 집단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멸망한 백제에 대한 한과 복수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663년 일본서기는 ‘오늘로서 백제의 이름은 끝났다. 고향땅 곰나루(웅진)에 있는 조상의 묘를 언제 다시 찾을까’라는 비통한 글로 ‘백제의 한’을 기록하고 그 좌절감을 일본신국론으로 조작해 억지스러운 우월의식으로 전환한다. 이는 조선과 중국(신라와 당) 땅을 뺏어야 한다는 정한론으로 이어진다.


백강은 오늘날 금강이 서해와 만나는 군산 앞바다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 주변은 가을이 되면 은빛 갈대밭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국과 일본 고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던 주변에 표지판이라도 하나 세워 한일 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는 장소로 만든다면 이것이야말로 미래의 신(
)한일관계를 만드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주류성 ::
백제의 마지막 거점. 위치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지금의 충남 서천군 한산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지만 충남 청양군 정산이라는 주장, 전북 부안군 위금산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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